우리지역 도서관에서 뽑아준 리스트.
사실 제목만 보고 별로 땡기지 않아서 마지막 책 설득, 다음으로 남은 책이 제철행복이었다.
어려운 제철행복 식물들이나 소개하는 책이려나 싶어 미루고 미루다 남은 2권중에 하나.
난 사실 책을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지만 많이 읽지는 못했다.
그냥 도서관에 가는 것 자체가 너무 좋았다.
책장 사이에 앉자 책을 읽는 행위자체가 너무 있어보인 달까?
그래서 중학교 때도 괜시리, 스트레스를 받는다. 마음이 복잡하다 싶으면
그냥 도서관에 혼자가서 이책 저책 책장 사이을 누비며 책 냄새도 잘 모르면서 책 냄새를 좋아하는 흉내를 내고 다녔다.
혼자서 그랬기 때문에 어디가서 나 책 좋아해 떠들고 다니진 않음 ㅋㅋ
그냥 혼자, 그 멋에 취한거다 ㅋㅋㅋㅋㅋ
(책도 안 읽으면서 ㅋㅋㅋㅋ )
그러다 라떼에는 말이야.
대출목록 카드가 책 표지 뒷장에 끼워져 있었지.
아무도 읽지 않는 책들을 찾아, 대출해서 내 이름을 써놓는 거지. ㅋㅋㅋ
그렇다 나는 혼자서 그런 행위를 즐겼다.
그땐 sns 가 없었기 때문에 정말 혼자 즐겼다.
암튼 서두가 길어졌다. 어쩌다 이얘기까지 온거지..
제철행복 제목만 보고 편견을 가져서 작가님에게 매우 죄송하다는 마음에 말이 길어진 듯하다.
제철행복을 읽기 시작하는데.
아.. 글이 너무 좋으네....
도서관 책이라 밑줄은 못긋고.. 책 테이프로 마킹해놓고 정리해놔야겠다. 싶었는데..
이렇게 테이프 많이 붙인 책은 또 처음이네 ㅋㅋㅋㅋ
내가.. 이렇게 글귀를 정리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얼마되지 않았다.
최근 몇달 전부터 .. 생긴건데.
책을 제대로 읽어야지 한 건 코로나 때부터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말도 제대로 못 찌글이고. 표현도 못하고. 육아만 하느라 머리가 텅텅해지는 것 같아서
자기계발한답시고 읽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년 읽었는데. 그 전까진 뭐 정리해야지 이런 생각은 못했다.
읽는 데만 급급했다.
올해 도서관 프로젝트들 참여하면서 여권 도장 찍는 거 하면서 리스트들에 있던 소설에 완전 빠져버렸고.
이야기에 빠져서 속도있게 읽혀나가는 책들을 읽으니 너무나 짜릿했다.
몰입의 즐거움이랄까.
자기계발서만 보다가는 그런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 ....
그러다 문득. 책에 나오는 좋은 글귀는 적어둬야지. 나도 정리를 좀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든 게 최근이다.
누군가 그랬나. 어디서 주워 들은 것 같은데
읽는 행위를 많이 하다보면, 나도 언젠가 쓰고 싶어진다고.
난 소설이나, 영화에 깊이 빠지면 한동안 잘 헤어나오지 못하고 배경도 파고 인터뷰도 파고 좀 파는 스타일인데.
그게 어딘가에 정리를 안해놓으니 날아가는 느낌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책을 읽고 난 후 머릿속인지 마음속에서 말들이 막 넘쳐나기 시작하는데
정말 쓰고 싶다는 욕구가 엄청나다.
근데 바로 쓰지 않으면 그때 그 감정이 사그라 들어서인지.
생각도 안나고 그 표현이 그 표현이 아니다. ㅋㅋ
정리하면서 다시 책을 천천히 보니까.
머릿속에 더 단단히 박히는 것 같고 (어차피 또 까먹을 테지만)
제철행복은 알아두고 우리 딸한테 말해주기 좋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머릿속에 남겨두고 싶었다.
그리하여 이렇게 적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제철행복을 읽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릴스도 한 편 만들었다는 사실 ㅋㅋ
난 아이와 여행 컨텐츠가 주라서 .
아이의 제철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과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여 챗gpt과 여러 대화를 나누 후 만들었는데
효과가 꽤 좋아서 팔로워를 몇 얻었다. ㅋㅋㅋ
그리고 읽고 난 후 , 달력을 볼 때 지금은 어느 절기인지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
난 한국사람이라면, 꼭 한번 쯤은 읽어봤으면 좋겠다 싶다!
p.63
춘분 무렵은 연중 산책 생활이 가장 바빠지는 시기다. 누군가 " 산책 자주 하세요? " 물어온다면 "그렇게 자주는 아니고... 일주일에 7일정도?" 답할 수 밖에 없는 계절. 나뭇가지도, 덤불도, 땅 위의 새싹도, 꽃망울도 하루 지나면 하루만큼씩 달라져 있어서 도무지 산책을 거를 수 없다. 무언가를 놓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런 아마 오늘 치의 봄이겠지.
3월 중준에 접어들면 익숙한 곳을 조금만 벗어나도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게 되니, 왔던 만큼 다시 되돌아 가야 하는 게 산책이란 걸 알면서도 걸음을 멈출 수 가 없다. 이 무렵 집을 나설 때마다 나는 늘 시인의 마음.
p. 73
더 나아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다그치는 인간 세상과 달리, 자연은 나무라지도 채근하지도 않는다. 나무가 나무로 살고 새가 새로 살듯 나는 나로 살면 된다는 걸 알게 할 뿐. 세상에 풀처럼 돋아났으니 다만 철 따라 한 해를 사는 것. 봄에 새순 같은 희망을 내어 여름에 키우고, 가을에 거두며, 겨울엔 이듬해를 준비하는 게 자연스러운 한해살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을 땐 큰 질문은 쪼개서 작은 질문으로, 큰 시간은 쪼개서 작은 시간으로. 1년이 막막하다면 다만 봄의 하루를 성실하게. 빈손으로 돌아온다 생각했는데 내가 펼쳐본 쪽지에 적혀있던 건 모두 나를 위한 답이었다.
p.79~ 80
뛰어서 퇴근했다! 벚나무 기다리는 집을 향해 빨리 뛰어가고 싶어지는 봄날 저녁.
만개의 시간이 짧다는 걸 알기에 매일을 아까워할 수 있었겠지.
벚꽃이 피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덩달아 부풀어 오른다. 그건 해가 갈수록 귀해지는 감정이어서 또 봄을 기다리게 된다. 올해도 내 마음이 잘 부풀어 오르나 지켜본다. 오븐 너머로 부풀어 오리는 빵을 지켜보듯이. 잘 구워지고 있나, 내 마음. 봄볕에 여전히 부풀어 오르고 있나. 그게 마치 마음이 살아 있다는 확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p.84
벚꽃 앞에서의 이 유난한 기분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다. 계절마다 자기 때를 맞춰 피고 지는 꽃은 늘 있는데, 왜 벚꽃 앞에서는 뜻 모를 초조와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동시에 느끼는 걸까? 그건 어쩌면, 겨울을 끝내고 맞이한 벚꽃의 시간이 사계절을 압축해놓은 듯 빠르게 흘러서인지도. 벚꽃 아래 서 있으면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꽃망울이 부풀다가 터지고 환한 꽃구름이 만들어졌다가 바람에 하염없이 흩어져 사라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일주일 남짓. 그사이 봄비가 내리거나 세찬 바람이 불면 시간은 더 줄어든다.
p.85
1년은 365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고작 봄의 하루도 시간을 내지 못하며 사는 게 정말 괜찮은 걸까? 벚꽃 앞에서 나는 늘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을 놓치면 1년을 기다려야 만날 수 있는 풍경이라고. 꽃은 내년에도 다시 필테지만 올해는 올해뿐이니까, 올해의 나에게 추억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만개한 꽃 아래 우리의 즐거움도 만개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
소란함을 피해 숨어들 수 있는 나만 아는 꽃놀이 명소가 있는 것도 좋겠지. 환한 꽃그늘 아래 자리를 펴고 앉아 시시각각 봄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아, 이 맛에 산다' 하는 흡족한 미소를 띨 그날까지. '이게 사는 건가' 와 '이 맛에 살지' 사이에는 모름지기 계획과 의지가 필요한 법이다. 제철 행복이란 결국 '이 맛에 살지'의 순간을 늘려가는 일.
p.87
생일 주간만 있으란 법 있나. 목련 주간, 벚꽃 주간, 라일락주간, 아까시꽃 주간..... 꽃이 피어 있는 일주일 동안 그 시간을 애틋하게 여긴다면 그게 무엇이든 나만의 주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명명의 힘은 생각보다 커서, 좋아하는 꽃이 만개하는 시기를 '나만의 ㅇㅇ주간'으로 정해둔다면 매년 생일 주간 버금가는 즐거운 행사가 될지도.
꽃은 늘 기다린 시간보다 짧게 머물다 가니,
봄이 오면 언제까지라도 오늘의 기쁨을 선택할 수 있기를.
내일의 즐거움을 예약할 수 있기를.
봄꽃이 재촉하듯 전하는 말은 늘 하나다.
"그러지 말고 나와서 놀자!"
p.93
절기상 어느 무렵을 지나든 '지금'에는 지나온 시간의 흔적이 쌓여 있고 다가올 시간의 단서가 숨어있는 셈이다.
'철들다'라는 말은 바로 이 절기, 제철을 알고 사는 것을 뜻했다.
'철부지'는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알지 못하니 어리석다는 의미. 때를 알아야 하는 건 때를 놓치면 안되는 일들이 있기 때문이다. 씨 뿌릴 시기를 놓치면 한 해 농사가 어긋나고, 꽃을 피우지 않은 나무에겐 열매가 맻히지 않는 것처럼. 결국 철이 든다는 건 지금이 어떤 계절인지를 알고 제때해야 할 일을 산다는 것.
p.95
제철 행복을 미리 심어두는 건, 시간이 나면 행복해지려 했던 과거의 나와 작별하고 생긴 습관이다. 그때 나는 '나중'을 믿었지만 그런 식으로는 바쁜 오늘과 바쁠 내일밖에 살 수 없었다. "밥 먹을 시간도 없었어" 지친 목소리로 자주 그렇게 말하는 동안 알게 됐다. 무얼 하든 무엇을 '하는 데'에는 결국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밥을 먹는 데에도, 산책을 하는 데에도, 대화를 나누는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원하는 시간의 자리를 마련해줄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당연히 행복해지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어렵게 찾은 방법은 두 가지. 오늘의 일과와 의무사이에서 '틈틈이' 행복해지기, 그리고 앞날에 행복해질 시간을 '미리' 비워두기. 틈틈이 행복해지는 건 영양제 먹듯이 챙기면 된다. 날씨 좋은 날 점심시간에 10분이라고 산책을 하고, 늦은 퇴근길에 맛있는 요리를 포장하면서 오늘의 기쁨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것. 행복해질 시간을 미리 비워두는 데는 약간의 성실함이 필요하다. 3개월 뒤의 달력에 동그라미를 치고 숙소를 예약해둔다. 내가 좋아할 게 분명한 제철 풍경을 나에게 선물해준다는 마음으로. 예전의 나는 아무것도 심지 않은 자리에 무엇이 나길 기대했던 걸까. 나를 위한 시간을 미리 심어두어야 그 자리에 어떤 기쁨이 나는지 볼 수 있는 데도.
~
제철 행복을 심어두길 역시 잘했지.
p.98
벚꽃 배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엔 돌미나리집에 가서 미나리전에 막걸리를 마신다.' 구체적인 계절 리츄얼이 생긴다는 건 그런 일이다. 나에게만 의미 있는 장소에 가서 나에게만 의미 있는 일을 하며 사는 재미를 느끼는 것. 별거 아닌 듯해도 이런 작은 움직임이 모여 삶에 생기를 더해준다. 내년에도 와야지, 하는 마음으로 다음 봄을 기다리게 해주기도 하고.
~
저 산 좀 봐.
요즘의 연두는 어쩜 저런 빛깔일까.
p.101
인생 최고의 돌미나리전이었다. 앞으로도 그 이상의 돌미나리전은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그건 그해, 그 봄, 그 밤, 모닥불과 보름달과 밤바람과 지금보다 조금 더 젊었던 우리, 그 모든 게 어우러졌을 때만 가능했던 맛이니까. 한 시절 최고의 친구가 만들어주었던 한시절 최고의 미나리전. 나는 그 밤에 액자를 두르고 그렇게 적어 마음의 벽에 걸어둔다.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어서.
p.101
누구도 가질 수 없기에 모두가 가질 수 있는 자인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창밖으로 이 계절에 이토록 환하게 불이 들어과 있는데 어째서 그걸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사는 걸까.
p. 109
사계절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봄- 여어어어어어름-갈- 겨어어어어어어울을 겪는 우리에게도 화장한 날씨가 소중하기는 마찬가지다.
p.110
누가 한낮의 밝기와 채도를 이렇게 올려두었지? 놀라면서 걷는 계절. 자연은 어서 나와 이 모든 것을 누리라고 말한다. 햇빛을 행복의 자원으로 여길 수만 있다면, 행복해질 기회는 이미 충분히 우리를 찾아오고 있다고.
p.110
물론 하얀 꽃의 이름을 알게 된다고 해서 특별한 일이 생기지는 않는다. 그냥 어떤 꽃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될 뿐. 대신 마음 한구석이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아주 조금 아름다워진다. 책갈피 사이에 넣어 잘 말린 꽃잎처럼. 평소엔 있는 줄도 모르고 살다가 우연히 그 책을 펼쳐야만 '아 내가 이런 걸 끼워두었지' 겨우 발견하게 되듯이. 그게 무슨 역할을 할지는 시간을 두고 지켜볼 일이다.
p. 123
옛 사람들은 소쩍새가 '솥 적(다) 솥 적(다)' 하고 울면 그해는 풍년이 들 거라 기대했다고 한다. '솥이 작으니 큰 솥을 준비하라'는 긍정적 신호로 해석했다고. '아니 그야 소쩍새 소리가 원래..' 싶어 이의를 제기할라치면 어디선가 긴 시간을 건넌 조상님의 헛기침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아무렴 소쩍새는 봄과 여름 사이에 앉아 해마다 우니, 그 소리가 풍작의 예언으로 들렸을 수밖에.
p.128
인숙 씨 (엄마) 방식으로 안부를 한번 물어보자고. <아침마당>을 보다가, 오이 꽃이 핀 걸 보다가 생각나면 연락하는 인숙 씨와 달리, 나는 누군가 생각나면 그 생각을 안고 가만히 고여 있는 쪽이다.
p.129
안 하던 일을 하기가 어려울 땐 작게 해본다. 그중 가장 쉬운 안부의 규칙은 '이름으로 된 간판을 발견하면 연락하기'다. 싱겁기로는 국내 최고인, 저염식 안부라 할 수 있다. 지혜 세탁소, 태광 약국, 연우 빌라 사진과 함께 전송되는 싱거운 안부. 그 사진 안에 괄호를 열고 들어가 혼자 괄호 닫고 앉아 있는 내성적인 속마음은 '생각나서 연락했다'는 말.
p.131
제대로 할 게 아니면 아예 안 할거라 마음먹는 것보다야 가볍게라도 하는 게 낫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안부'라는 게 있나? 안부는 짧아도 가벼워도 먼저 건네면 무조건 좋은 것이다. 더 이상 같은 회사를 다니지 않고, 함께 듣던 수업은 진작 끝났고, 갈림길에서 헤어진 우리 삶이 점점 멀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당신을 떠올리고 있다는 말. 내 삶에 네 자리가 있다고 얘기해주는 일.
p.139
습도와 온도가 높아 찌는 듯 견디기 어려운 더위를 무더위라 부른다. 짝을 이루는 '불더위'는 불볕더위. 그러니까 몹시 더운데 ' 찜통' 안에 갇힌 것 같은 날은 무더위, '불가마' 속에 갇힌 것 같은 날은 불볕더위란 소리다.
~
하느님이 보우하사 습도 낮고 모기 없는 망종 무렵엔 무얼 해야 할까? 부지런히 바깥을 즐겨두면 된다. 할 일이라곤 그게 전부다. 실내에 있기보다 이왕이면 바깥을 누리기. 이 시기가 금방 끝난다는 걸 아는 사람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p.141
계절마다 좋아하는 것에 마음을 쏟으며 사는 일이 좋다. 기쁘게 몰두하는 일을 어쩌면 '마음을 쏟다'라고 표현하게 된것일까. 여기까지 무사히 잘 담아온 마음을 한군데다 와르르 쏟아붓는 시간 같다. 그렇다면 내게 초여름은 '바깥'에 마음을 쏟고 지내는 계절. 좋아하는 바깥은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즐기고 그게 곧 잘 사는 일이라고 믿으며 지낸다.
~
제철 행복을 미리 심어두어서 좋은 점 중하나는 그날이 오기까지 틈틈이 설렐 수 있다는 것. 앞일을 대체로 모르는 것투성이지만 6월에 일어날 좋은 일 하나는 알지, 그 사실이 고단한 일상을 건너는 힘이 되어준다. 무엇보다 스스로를 좋은 순간에, 좋은 풍경에 데려가는 건 일부러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p.145
내게 알맞은 행복을 찾는 일은 다른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바라는 것을 귀담아듣는 데서부터 시작하니까. '이런 걸 보니 좋네, 여기 있으니 마음이 편하네, 이걸 먹으니 행복하네' 내가 언제 그렇게 느끼는지를 알아채고, '이런 걸 보고 싶다, 이런 데 가고 싶다, 이런 걸 먹고 싶다' 내가 바라는 것들을 알아줄 때. 그 목록만으로 우리는 살아 갈 힘을 얻는다. 내게 내 마음을 알아주는 것만 한 위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망종엔 우리 모두 바깥 인간이 되자. 밖으로 나가 초여름을 누리자. 잠시여서 아름다운 계절을 즐기며 스스로를 웃게 해주는 일이야말로 변치않는 제철 숙제니까.
p.157
하지를 지나면 낮의 길이는 매일 1분 남짓 짧아지기 시작한다. 내일로 미루지 말고 오늘 딱 1분씩만 더 즐겁게 보내라는 것처럼. 겨울의 긴긴밤에 모여 앉아 나눌 추억을, 여름의 긴긴낮에 만들어두라는 말처럼. 그러니까 하지엔 역시 노는 게 남는 거다. 무엇이? 그야 추억이!
p.162
너 어느 절기생이야? 나 소서! 작은 더위의 계절에 태어났어. 너는? 난 빠른 경칩. 일찍 나온 개구리라고 할 수 있지. 책을 쓰는 동안 친구들에게 틈틈이 어느 절기생인지 알려주기도 했다. 곡우생이네, 풍요의 비가 내릴 때 태어난거야. 마치 별자리의 운명을 알려주는 점성술사처럼 태어난 계절의 꽃말을 손에 쥐고 있는 기분.
(나는 처서. 더위가 멈추며 가을이 깊어지는 때)
p.168
마음이란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것이니 마음에만 새겨둔다면 자기 혼자만 그 기쁨을 즐기게 되고, 다른 사람과 함께 기뻐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큰 기쁨을 마음에 새겨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사물에다 새겨두고, 사물에다 새겨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마침내 정자에다 이름 지었으니 기쁨을 새겨두는 뜻이 큰 것이다.
p.177
싱싱한 연잎 뒤로 술을 부은 후 줄기와 이어지는 가운데 부분을 비녀로 찔러 구멍을 낸다. 그럼 술이 줄기 속으로 흘러내렸는데, 연잎 줄기를 통과한 술은 연꽃 향기가 스미고 차가워져서 좋았다고. 커다른 연잎을 술잔으로, 길 줄기를 빨대로 삼은 것이다. 이렇게 마시는 술을 연꽃 하, 마음 심 자를 써서 하심주라 불렀다.
조상들로부터 풍류를 배울수록 여름의 숙제가 분명해진다. 한량 되기. 더위에 지쳐 쓰러지듯 쉬는 것 말고, 보다 적극적으로 한량되기! 한번으로 부족하니, 하루짜리 여름방학을 세 번에 나눠가졌던 삼복처럼.
p.192
철마다 주변의 자연을 살피다 보면 환경과 기후를 걱정하는 마음이라는 게 결국 좋아하는 것을 계속 보고 싶은 바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보았던 제비와 꽃을 이듬해에도 다시 볼 수 있길 바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지키고 싶은 것을 지키는 데에는 결국 그런 애정 어린 마음들이 필요하다.
p.207 (처서)
그렇다고 눅눅한 마음마저 거짓이었던 것은 아니다. 여름의 우리에겐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속을 다 꺼내놓고 말 할 수 없을 때 말릴 수라도 있다면.
p.218 (백로)
참나뭇과 낙엽활엽수 각각에 얽힌 이야기들도 흥미롭다. 먼저 상수리나무.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난을 떠나 도토리묵을 먹었는데, 이 일을 계기로 '수라상 맨 위에 오른 도토리'라는 뜻의 '상수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피난길에 먹을 것이 부족해 어쩔 수 없이 백성들이 먹던 음식을 임금께 올린 것인데 선조가 이를 아주 맛나게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신갈나무는 '새로' 난 잎의 색이 ' 갈색'을 띤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쪽은 '신발 밑창설'이다. 옛날 나무꾼들이 숲속에서 나무를 하다 짚신 바닥이 해지고 닳으면 '신'안에 이 잎을 '깔'아서 신었다는 것. 다른 잎들에 비해 맨발에 닿아도 부드럽고 잘 미끄러지지 않는 재질이라 애용되었다고 한다.
떡갈나무는 그럼 '신'이 아니라 '떡'에 깐 것일까? 정답. 시루떡을 찔 때 시루 밑에 떡갈나무 잎을 깔고 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떡갈나무 잎으로 떡을 감싸서 찌기도 했는데, 뒷면의 털이 방부 작용을 해서 이렇게 찐 떡은 쉽게 변질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많은 참나무 이파리 중에서 어떻게 떡갈나무의 효능을 가려낸 것인지 신기하기만 하다.
굴참나무는 나무껍질의 골이 유난이 깊다 해서 '골참'이라 불리다 '굴참나무'가 되었다. 산간 지방의 지붕(굴피집)의 재료. 유난히 보온성이 좋고 비도 좀처럼 새지 않았다고 함. 와인 병의 코르크 마개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것도 굴참나무 껍질이다.
갈참나무는 가을이 끝날 때까지 제일 오래 단품 든 잎을 달고 있어서 '가을 참나무'라는 말을 줄여 갈참나무라 불리게 되었다.
졸참나무는 참나무 종류 중 잎과 열매가 가장 작아 '졸'을 붙여 졸참나무라 불리게 됐다. 참나무계의 졸병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더 마음이 쓰인다. 하지만 원래 작은 것이 진국인 법. 졸참나무 도토리는 다른 도토리에 비해 떫은 맛이 덜해서 묵을 만들면 맛이 제일 좋기로 알려져있다.
(이 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 재미있어서 잘 외워뒀다가 우리 딸에게 말해줄거다. )
p. 223(추분)
이 계절만 되면 환절기 알레르기처럼 찾아오는 것이 있다. 주로 날씨가 맑다 못해 영롱한 가을날 아침에 나타나는 증상으로, 창문을 열고 첫 바람을 쐬면 재채기가 나온다. '에취' 대신 "캠핑!" "캠핑!" 하고. 이름하야 캠핑 재채기.
p. 227 (추분)
불을 피우듯, 음악을 고르듯, 좋은 기분도 결국 내가 만드는 거라는 생각. 1년 중 가장 사랑하는 온도를 찾아내어 초여름엔 싱그러운 숲으로, 더위가 한풀 꺾인 초가을엔 노을 지는 바다로 떠나는 건 내 기분을 위한 작은 노력인 셈이다.
p. 235 (한로)
그보다 작은 소쿠리엔 대추가 한가득. 여름내 열매가 저금하듯 차곡차곡 채운 햇볕이 저 안에 다 담겨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리도 속에서부터 빛을 내며 영글었을 수는 없겠지. 시인은 일찍이 그것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장석주, 대추 한 알
p.237 (한로)
그러고 보면 제철 행복은 결국 '이때다 싶어' 하는 일들로 이루어진다. "요즘은 무화과가 제철이야, 이거 먹어보니까 맛있더라."
~
지금 가야 가장 근사한 풍경이 기다리는 곳에 함께 찾아가는 일도. 혹은 더워서, 추워서, 비가 와서, 눈이 와서 더 즐겁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하는 것도 모두 제철 행복의 목록. 그렇게 생각하면 계절과 날씨에 발맞춰 산다는 게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제철 행복 챙겼어? 하는 말이 언제까지라도 우리들의 다정한 안부 인사가 될 수 있기를.
p.252 (상강)
단풍 맛집이라는 수목원이나 캠핑장은 예약 창이 열릴 때마다 순식간에 마감되고 만다. 그렇게 다들 가을에 진심인 것, 아름다움 앞에 열심인 것. 그 마음을 헤아리면 이 모든 소동이 극성이 아니라 정성으로 느껴지고 마는 것이다. 성수기가 성수기인 이유는 그때가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라는 당연한 사실과 함께. 우리는 저마다의 제철 숙제를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다.
p. 256 (상강)
지금 내안에 없는 것은 미래에도 일어날 수 없다. 미래는 이미 다, 우리 안에 있다. 그러니 우리에게도 이 가을은 닫힌 셔터 안쪽에서 봄을 준비하는 시작의 계절일 수 있는 것이다.
p.276(소설)
겨울이 시작된 순간부터 자신이 만나는 모든 트리, 모든 눈사람을 찍어서 인스타그램 스토리 하이라이트로 한 딴 한 땀 모은다는 분도 있었다. 나므이 기록 얘기에 언제나 눈을 빛내는 나는 '그래, 뜨개질은 못해도 박음질은 할 수 있지!' 싶어서 올겨울 그렇게 기록해보고픈 주제를 각자 찾아보자고 권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좋은 순간을 sns에 촘촘히 모아두는 행위를 가리켜 '박음질'이라 부르는 것 자체가 삶에 대한 은유 같다. 그런 별것 아닌 순간들이 모여 오늘과 내일을 바느질하듯 이어주니까.
역시 제철 행복은 나눌수록 즐거워진다. 무엇보다 이 계절 안에만 있는 작은 기쁨들에 대해 얘기할 때, 우리가 모두 웃는 얼굴을 하고 있어서 좋다. 봄날의 벚나무 아래에 선 사람들처럼, 여름의 해변에 흩어져 앉은 사람들처럼. 삶을 지탱해주는 건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 속 소소한 기쁨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사소한 것들은 실은 그 무엇도 사소하지 않다는 사실도 함께.
p.281(소설)
"굳이 방어 먹으러 제주에? 서울에도 파는 데 많은데." 그런 말이 떠올랐다면 넣어두시길. 여기서 포인트는 '굳이'에 있으이까. '굳이데이'의 창시자인 뮤지션 '우즈'도 말하지 않았던가. 낭만을 찾으려면 귀찮음을 감수해야 한다고. 사는 거 뭐 있나. 제철 음식 찾아 굳이 거기까지 가서, 굳이 줄을 서고, 마침내 고대해온 음식을 앞에 두고 이 계절을 기념하듯 잔을 부딪치는 그런 거지. 한겨울 방어 먹으러 모슬포에, 늦겨울 새조게 먹으러 천수만에, 이른 봄 도다리쑥국 먹으러 통영에 '굳이' 가는 그때야말로 비로소 제철을 아는 어른의 세계에 진입한 기분이 든다. '산지가 바로 맛집'인 제철 음식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귀찮음의 여정에 몸을 싣는 사람만이 제철 낭만을 누릴 자격을 얻는 법. 효율 같은 것만 따져서는 한 번 뿐인 인생이 팍팍해진다. '언제까지 낭만 타령이나 할 거냐'는 말에는 '평생'이라는 답을 미리 준비해둔다.
나만 아는 기쁨의 목록을 가지고 그 목록을 하나하나 지워가면서 하나의 계절을 날 때 다른 숙제는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겨울이란 계절은 여행지 같다. 긴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틈틈이 준비물을 챙기고, 도착해서 하고 싶은 일들을 자꾸 적어두게 되는 걸 보면.
p.328 (대한)
시집도 영화도 좋지만, 겨울 아지트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은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일이다. 다른 부자가 되는 것도 (물론) 좋겠으나 밑줄 부자가 되어 보내는 날들이 제일 풍요롭다. 오래된 밑줄 옆에 새로운 밑줄을 긋다가 만득 창밖을 보면 여전히 깊은 밤. 그러다 바깥에 눈이라도 내린다면 완벽한 겨울의 한 장면이 완성되겠지. 매서운 겨울이 '아늑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묘한 일이다. 차가운 눈을 보며 '따뜻하다'고 느끼는 것도. 겨울만이 알게 하는 그 따뜻함과 아늑함에 기댄채로 우리는 봄을 기다린다.
p.330(대한)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자리를 교체하는 시기이니 지난해와 이듬해를 이어주는 '사이'의 시간에 제대로 매듭을 지으라는 말로도 읽힌다. 마음도 쓰는 만큼 닳는다 했다. 한 해 동안 쓰느라 귀퉁이가 부서지거나 틈이 벌어진 마음의 이곳저곳을 울타리처럼 수리하면서 남은 겨울을 보내고 싶어진다.
p. 331 (대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는 것은 나의 오랜 바람 중 하나였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 지도 모르면서 내내 바랐다. 내가 나 이상이 되려고 애쓸 때, 행복해지고 싶어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그 열심이 도리어 나를 해칠 때, 하루하루 사는 일이 발끝을 세워 걷는 걸음 같을 때.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 다른 방법이 있을 것 같았고 '자연스럽게' 사는 일에 그 답이 있을 것 같았다. 나무와 새들의 겨우살이를, 계절이 하는 일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산다는 게 무슨뜻인지 조금은 알아가는 기분이다. 겨울이 겨울다워야 하는 건 겨울이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북쪽에서 불어온 세찬 바람은 숲을 몇 차례 흔들어 빈자리를 만든다. 마른 나뭇가지나 꺾인 데가 있던 줄기는 바람에 떨어져버리고, 나무는 남길 것만 남긴 채 겨울을 난다. 최소한의 에너지를 튼튼한 가지를 지키는 데 쓰면서. 그렇게 생겨난 숲의 여백으로 봄이면 새로 태어난 가지들이 뻗어나갈 것이다.
~
자연스럽게 산다는 건 결국 계절의 흐름을 알고, 계절이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놓는지도 알고, '제때' 해야 할 일을 찾아서 했던 옛사람들과 동식물처럼 사는 것.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하기로 되어 있는 흐름에 내 걸음을 맞추는 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하면, 불필요한 가지가 바람에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꼭 필요치도 않은 것을 이것저것 매달고 여태 그것을 풍성함이라 여기며 살았던 것은 아닐까. 내가 나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이거구나, 나머지는 결국 부수적인 것들이구나. 살아온 시간이 쌓인 만큼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선명해지면 좋을 텐데, 자주 잊고 새로 배우길 반복할 뿐이다. 그러니 다시 돌아오는 계절이 있어 우리 삶을 새로고침 해준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봄이 오는 한 우리는 매번 기회를 얻는다. 동시에 이번 봄은 다음 봄이 아니기에 유일한 기회이기도 하다. 한 번뿐인 계절을 귀하게 여기면서, 한 번뿐인 삶을 자연스럽게 살아가고 싶다. 겨울 숲의 저 나무들처럼, 신의 부재속에서도 할 일을 찾았던 옛사람들처럼.
"우리의 제철은 지금, 언제나 알맞은 시절을 보내고 있음을 잊지 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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